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고전읽기경시대회를 아시는지?

야야선미 2003. 6. 2. 12:03

독서경시대회를 한다고, 그것만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교육청 말을 듣고,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릴까 싶어 썼어요. 우리반 아이들한테만 들려주고 말려다가.
그런데 이번에는 
"교육감실에 칼들고 쳐들어간 년!" 이란 소문이 생길까봐 일단 여기 올립니다.(뭔말이냐고요? 아는 사람만 압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줬더니 뭔가 알아듣겠다는 것인지 고개는 끄덕이더만 모르겠어요. 나만 흥분하는 건지.......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요새 무슨무슨 경시대회 땜에 고생이 많지? 날마다 엄마하고 한자경시대회 공부한다는 황현이 이야기를 듣고 '황현이 고생 좀 하는구나.' 했어. 그런데 알고보니 수학경시대회 땜에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보충하는 동무도 있더구나. 컴퓨터 자격증 딸거라고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없이 컴퓨터실에 나간다는 동무도 있고. 또 독서경시대회니 독서 인증제니 해서 책읽기도 이제는 숙제고 시험이 되어가니 너거들이 해야할 일이 자꾸 많아지지? '아이구, 아이들 할 거리가 자꾸 이래 많아지니 아아들이 힘들겠다.' 싶어서 맘이 참 무거워.
그런데 말야 무슨 경시대회니 그런 걸 생각하면 야야도 어릴 때 마구 흥분해서 떠들어대던 일이 하나 있어. 야야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삼십년이 지난 그 시절에도 경시대회가 있었어. 뭐냐고? <고전읽기 경시대회>라는 거야. 요새 생긴 독서경시대회라는 거하고 같아. 야야네 학교는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는 조그만 시골학교인데도 반대표를 뽑고 학교대표를 뽑아서 고전읽기 경시대회를 위해서 날마다 책을 읽고 외우고 했지. 교육청에서 정해준 책을 읽고 외운 다음 시험을 치는 거야. 야야도 거기에 뽑혔지.
처음에는
"아이구 저집에 야야는 또 시험을 잘 쳐서 대표로 뽑히가 군대회에 나간다미."
하면서 부러움 섞인 칭찬을 해 줄 때는 어깨가 으슥거리고 그랬어. 야야는 길에서 동네 어른들이라도 만나면 
"오냐, 그래. 니는 우예 그래 몬하는기 없노? 이번에 또 일등을 했다카미?"
하시면서 칭찬해 줄 걸 기대하면서 괜히 동네 어른들 앞에 나가서 크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그랬어. 또 다른 아이들 다 집에가고 나서 선생님하고 몇몇 동무들만 남아 책을 읽으니 그것도 좋았어. 보통 때 교실에서 공부할 때보다 말도 더 나긋나긋하게 해주는 선생님도 좋고, 어둑해져서 저녁 먹을 때가 다 되어서 집에 가면 골목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어허이, 이적지 공부하고 오나?" 하고 아는 척을 해주는 것도 좋았지.
또 가끔 대표로 뽑힌 동무들 몇몇과 책을 옆구리에 끼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에 기대고 앉아 무릎 위에 책을 처억 펴놓고 흘러가는 구름도 보다가, 내려다보이는 들판에 허리 구부리고 피 뽑는 모습도 보면서 신선놀음을 할 때는 그래도 좋았어. 그땐 우리도 제법 책읽는 멋있는 아이처럼 보였거든. 그런데 그것도 금방이야. 그런 재미도 하루이틀이지 어른들도 날이 가면서 차츰 잊어버리고, 오후에 남아서 날마다 날마다 책을 읽고 외우는 날만 되풀이 되니 좋은 것만도 아니었어. 시험을 치는 책이 딱 정해져 있으니까 다른 책을 아무리 읽고 싶어도 그걸 펼쳐들 엄두를 못내는 거야. 어쩌다가 선생님 몰래 다른 책을 펴들고 앉았다가는 
"물어라카는 쥐나 물어라. 이넘들아 너거들이 지금 이 거 보고 있을 때가?"
하면서 꿀밤을 한 대 꽁 쥐어박기가 일쑤였어.
일년내내 아니 오학년때부터 육학년때까지 내리 두 해를 같은 책만 읽고 또 읽으니 재민들 무슨 재미가 있겠어?
지금도 잊혀지지 앉는 책! 이순신장군, 임경업전, 신유복전 박씨전, 이솝이야기, 그리스 로마신화 뭐 그런 책들인데, 그걸 날이면 날마다 읽어야하니 나중에는 지겹기도 하겠지? 달달 위워서 시험치고 매겨서 틀린 것 다시 외우고. 그래서 잘하면 군교육청 대회에 나가고, 또 잘하면 도교육청대회에 나가고. 나중에는 전국대회에 나가서 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전국대회까진 나가지도 못하면서 날마다 고생만 한거지.
정말 지겨운 날은 선생님한테 혼날 생각하고 아예 땡땡이 치고 노는 때도 있었어. 어쩌다 선생님도 그런 우리가 안됐는지 마구 야단만 치지는 않으셨어.  그냥, "내가 할 수만 있다카면 그냥 너거들 머리에 이 책들 꼭꼭 접어서 탁 넣어주고 싶다." 그라고만 넘어가셨거든.
날마다 똑같은 책을 읽기가 지겨운 것도 지겨운 것이지만, 자꾸 읽다가 보니 이 책들이 영 말도 안되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야. 야야는 선생님이 안계시면 동무들하고 앉아서 쫑알거리곤 했어. 읽던 책을 들고 쫑알거리다 보면 어린 나이에도 참을 수 없는 것들이 엄청 많았거든.
"야야, 너거들 박씨전 있다 아이가? 그 박씨전 그거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맞제? 얼굴이 못났으면 와 뒷채에서 나오지도 못하는데? 그래 구박을 하다가 신통력으로 나라를 구했다고 그때야 안방으로 모시고 가는기 말이나 되나?"
"그라고, 그래 평생을 구박받고 남편한테 버려졌다가 나중에 모시고 간다고 고맙다고 가는 그런 것도 나는 싫다. 내 같으면 안가겠다."
"맞다. 여자는 뭐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이가, 어데."
"나는 그거 읽을 때 분해 죽겠더라."
"그 남편도 안 웃기나? 그래 못 생기고 냄새도 나는 여자라면 지가 장가 안 가겠다고 해야지. 시킨다고 시키는대로 해놓고는 한 여자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기 말이 되나?"
"또 그것만 있나 어데. 너거들 그것도 웃기제? 나라에 전쟁이 났으면 말이 되게 이겨야지. 신통력으로 나라를 구한다카는 기 말이 되나?"
"그래, 아무리 옛날 이야기라도 스스로 힘을 기르고 지혜를 모아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다 그래야 말이되지. 그라마 신통력 없는 우리겉은 사람은 아무 것도 아이다 그것밖에 더 되나?"
"그래, 뭔 일이 일으면 꼭 신통력으로 이겨낸다카는 그런 거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맞다."
"그라고 옛날이야기면 확실하게 옛날 이야기로 지어내야 아이들이 안 헷갈리지. 유정이다, 휴정이다 카민서 진짜로 있던 사람도 나오니까 진짜 역사책 같다 아이가?"
같이 책을 읽고 외우던 동무들은 하나가 입을 열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렇게 줄줄이 책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야야가 생각하기에 말이 안되는 책은 그것뿐이 아니었어.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아아참 요새 만화로 만들어서 나오는 책이 아주 인기있다던데. 바로 그 책을 교육청에서 고전읽기 경시대회 책으로 지정해 줬다는 거야. 야야는 그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힘들고 짜증이 났거든. 거기 나오는 신이랑 나라 이름 무슨 동네 이름이 모두 어려운 다른나라 말이라서 아무리 해도 잘 외워지지 않는거야. 이름이 길기는 왜 그렇게 길던지. 또 비슷한 이름은 왜 그렇게 많고, 나오는 등장인물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줄거리는커녕 이름이나 동네 이름 외우는 것도 힘이 들었거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야야가 짜증스러운 것은 그 신들의 이야기였어. 무슨 신들이 그렇게 속아지가 비좁고 질투가 많은지, 날마다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피터지게 싸우는 이야기야. 저보다 예쁘다고 그걸 못 참고 벌 주고 앙갚음하고. 아버지하고 아들이 맞서서 싸우질 않나? 하여튼 야야는 그 서양신들이라는 것이 인간보다 못한 짓들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고전이라고 날마다 읽고 시험공부를 해야하니 맘이 좋았겠나?
이솝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랬어. 힘없고 약한 동물은 늘 괴롭힘을 당하고, 희생이 되야하거든. 어쩌다 살아남는 동물은 힘이 없으면 잔꾀라도 부릴 줄 알아야하는데 그러면 잔꾀도 못 부리고 힘없는 동물은 숲속에서 늘 당하는 것만 같아서 그 책도 그렇게 좋질 않았지.
한번은 야야가 선생님한테 책이 말도 안되는 것이 많다고 못 읽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얄마들아. 너거들이 그래도 그래 밤이고 낮이고 읽으놓으이 그런 눈이 깬다 아이가. 고마 잔주꾸 읽으래미." 하고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거라. 선생님 말마따나 같은 책을 수십번씩 읽으니 그런 말도 안되는 것들을 찾아내는 눈이 깨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 눈에 깨인 말도 안되는 것들을 말도 안된다고 말할 기회를 주든가. 그저 거기 있는 내용은 다 훌륭한 고전이니 외우고 번호를 골라서 적으라는데, 그것이 어떻게 공부가 되겠노 말이다.
시험은 또 어떤지 아나? 똑같은 책을 수십수백번을 읽고 달달 외우니 아이들이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시험에 안 틀리겠지? 그런데 큰 대회에 내 보낼 대표는 뽑아야하고, 또 그 중에서 뽑힌 아이한테만 상을 줘야하니 이젠 책을 잘 읽은 아이를 뽑는 것이 아니라 대표를 뽑고 나머지 아이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문제를 만들어 내는 거야. 말도 안되는 문제가 나오는 거란 말야. 야야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웃기는 문제가 있어. 신유복전이라고, 위인전을 읽었는데.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이런 장면이 나와. <<땅거미가 내려앉는 저녁무렵에 한 거지아이가 동네 어귀에 들어서. 머리는 한달을 안 빗었는지 일년을 안 빗었는지 빗자루보다 더 헝클어지고 뻣뻣해. 이마에는 이가 서너마리 기어 내려오고 있어. 누더기를 덧대서 기운 옷은 손가락 하나만큼 성한 데도 없이 더덕더덕 기워 입고 얼굴에는 땟국이 쫄쫄해. 그렇지만 하는 짓거리나 총명스런 눈매며, 귀티가 나는 얼굴은 한눈에 보아도 예사로운 아이같지 않아 보인다.>> 뭐 그렇게 주인공을 소개하면서 책이 시작되는 거야. 그런데 시험 문제가 이런 거였어.

<유복이가 그 동네에 들어온 것은 언제인가?>   보기에는 1)조선 oo 임금 때  2) 159* 년경 어느 임금때  뭐 그렇게 나오다가   4)땅거미 지는 해질녘.
 야야는 그 문제를 앞에 두고 얼마나 고민했던지 몰라.
'이 사람이 살았던 때가 무슨 왕이었더라?'
'이 사람이 이름을 떨친 때가 무슨 왕 때였으니 이 아이가 어렸을 때니까 그 앞에 왕이 아닐까? 그러면 그 앞에 왕은 누구지? 그러니까 대강 1590~ 몇 년 쯤 될까?'
'신유복이 어렸을 때 무슨 대감이 도와줬으니까 그 대감이 어느 왕 때의 사람이었더라?'
그렇게 온갖 고민을 다하고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을 다 끌여다가 왕과 그 연도를 알아내느라 끙끙거렸는데 정답은 '4번 해질녘'이라고 했어. 책의 전체 줄거리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고, 주인공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그런 문제를 보고 기가 막혔지. 선생님한테 그걸 따지느라고 시험지를 들고 앞으로 나갔는데 말을 시작하자마자 막 울음부터 터지는거라. 제대로 조리있게 따지지도 못하고 울다가 자리에 들어와 앉는데, 선생님이 그라는기라.
"교육청에서 엔간이 알아서 냈겠나. 그러니까 수십 수백번 골백번을 읽고 토씨 한 개도 안 틀리야 일등한다 안 카더나."
내가 너거들같은 아아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야야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한마딜 내뱉고 말았어.
"씨바 니나 그렇게 골백번 읽어봐라."
물론 선생님한테까지는 안들리고 그 둘레 두어사람한테 들릴 정도였지만. 야야는 시험이라면 그렇게 말도 안되던 그때 그 시험이 늘 떠오른대. 그렇게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문제는 그 뒤에도 늘 있었어. 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청대회에서 나오는 문제도 종종 그랬어. 책을 줄줄 외다시피 하는 아이들을 떨어뜨릴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나? 뭐 늘 그랬거든.
그런데 어른이 되고난 뒤에 야야가 더 억울한 건 다른 것이래. 그렇게 책을 읽고 싶어하던 초등학교 시절 오학년 육학년 그 좋은 시절을, 그렇게 두 해를 고스란히 말도 안 되는 책에만 매달려있었던 것이 가장 억울하고 한심하다는 거야. 한참 책 읽기 좋은 나이에, 책을 읽고 싶어하던 그 때에 고작 교육청에서 정해준 몇 권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이 억울한거지.
초등학교 때 그렇게 맘놓고 읽고 싶은 책도 제대로 못읽고 졸업을 했어. 그런데 이놈의 중학교엘 가니 주초고사라고 해서 월요일마다 시험을 치고는 나들간에다가 일등부터 백등까지 이름을 좌라락 붙여대는 거라. 나들간에 이름이 붙고 안붙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월요일마다 시험을 치니 시험치는 책 말고는 들여다볼 엄두를 못내. 야야같이 농사짓는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공부 마치기 바쁘게 들이다 집이다 뛰어가서 일을 거들어야하는 농사철에도 학교 시험은 쭈욱 게속됐지. 그런 판에 학교에서라도 틈나면 시험공부를 해야지 언제 읽고 싶은 책한권을 제대로 읽었겠나? 중학교 때는 그렇게 삼년을 좋은 고등학교에 몇명이나 보내냐는 학교의 등살에 책 한 권 제대로 못읽고 졸업을 했어.
좀 커서 나이가 드니까 다른 책을 읽을 엄두도 못 내게 옆에서 닥달했던 선생님들도 밉고, 그런 걸 만들어냈던 교육청도 밉고 그렇대. 야야는 그때 선생님이 그 시험 별거 아니라고, 읽고 싶은 사람은 읽고 시험쳐 볼 사람은 한번 도전해 보라고 그렇게라도 말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대.
요새 어린이 신문이나 학원같은 데서 나눠 주는 쪽지를 보면서 내가 걱정이 많이 돼. 독서 인증제니 독서 경시대회니 그런 걸 한다고 광고가 나오면 어머니들은 또 그걸 해야한다고, 남들보다 먼저 해야한다고 너희들을 끌고 다닐까봐 걱정이 되는 거야. 교육청에서 독서 경시대회를 한다니 학원이고 어데고 또 저렇게들 나서는구나 싶어서.
너거들은 야야가 어릴 때 책 몇권에 두 해를 고스란히 날리고 나중에 억울해 하는 그런 짓은 안 했으면 좋겠다. 교육청에서 내주는 필독도서며 권장도서 같은 데만 갇혀서 너거들이 맘껏 읽을 책을 못보고 지나가는 그런 일이 제발 없기를 바란다 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