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흘러가요>
이응인(세종고 교사, 밀양문학회)
손에 거머쥔 것들 잠시 내려 놓고
주머니 불룩한 것도 까뒤집고
어깨 무거운 짐도 풀어 놓고
신발이나 양말도 좀 벗어요.
이제 몸을 낮추고 낮추어
자갈밭에 귀를 묻어 봐요.
강의 가슴에 두 손을 얹어 봐요.
아늑한 숨결에, 부드러운 꿈틀거림에
입을 맡겨 봐요.
귀를, 온몸을 맡겨 봐요.
내 귀와 그대 입이 만나요.
그대 손과 내 눈이 만나요.
그대 든든한 어깨와 내 뜀박질하는 가슴이
녹아서 흘러가요.
흐르면서 모래밭에 스며 맥을 뛰게 하고
버들숲에 이르러 치렁치렁한 머리를 감겨요.
사람 사는 마을을 품어 주고
산을 껴안고 다독이며
들판 가득 젖을 물리고
갈대의 발을 씻겨 주어요.
그렇게 흐르고 흐르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어머니가 되어요.
우리 함께 흘러가는 꿈을 꾸어요.
말로 꾸는 꿈이 아니라
몸으로 꾸는 꿈,
밤에 꾸는 꿈이 아니라
밤낮없이 꾸는 꿈.
흐르면서 웅얼울얼 노래가 되는
꿈을 꾸어요.
가슴 깊이 박힌 쇠말뚝
노래로 흔들어 뽑아요.
숨도 못 쉬게 만드는 시멘트 암 덩어리
부드러움으로 녹여 내요.
막힌 핏줄 톡톡 터뜨려
모두 하나로 이어
끝없이 달려가요.
우리 함께 흐르고 흘러
생명의 따뜻한 밑바닥으로 가요.
우리 함께 흐르고 흘러
이 땅의 아픈 곳 싸안아요.
우리 함께 흐르고 흘러
울음 가득한 강
온몸에 퍼지는 독을 빨아내요.
그대 손과 내 눈이
내 귀와 그대 입이
강이 되어 가만가만 흘러가요.
한 없이 흐르고 흘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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