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똥 누고 가는 새>에서 / 임길택

야야선미 2011. 1. 26. 10:58

 

고마움 / 임길택

 


이따금 집 떠나

밥 사먹을 때


밥상 앞에 두곤

주인 다시 쳐다봐요.


날 위해

이처럼 차려 주시나


고마운 마음에

남김없이 먹고서


빈 그릇들 가득

마음 담아 두어요.     ---<똥 누고 가는 새>(실천문학사 1998년)




지피 값 / 임길택


가시에 손 찔려 가며

몇 날 걸려 지피를 땄다.

열닷 되 모으는 동안

잎 가리느라 시간을 더 많이 썼다.


칠팔만 원은 받을 수 있으려니

속셈을 하고 또 하며

장날 기다려 읍으로 나가니

한 되에 삼천 원.


'돈이 적구나' 생각하다가는

누가 읽었을까 부끄러워

얼른 그 마음 숨겨버렸다.     ---<똥 누고 가는 새>(실천문학사 1998)

 



부엌 / 임길택


쓰다 남은 판자조각에

비뚜름히 새겨놓은 글귀


― 없는 대로

― 불편한 대로


아궁이 앞

불쏘시개 솔잎 한 줌만이

날마다 이 글귀 읽고 있다.     ---<똥 누고 가는 새>(실천문학사 1998)

 

 

 


감 / 임길택

 


올 같은 감 흉년

또다시 올까?


몇 개만 달린 감

그냥 두었다.


꽃으로 보려고

따질 않았다.     ---<똥 누고 가는 새>(실천문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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