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가 만나는 아이들

내가 진짜로 큰일하는 거 맞아요?

야야선미 2011. 11. 9. 19:31

<내가 진짜로 큰일하는 거 맞아요?>

 

읽기책 없어요 집에요? 몰라요

수학책 없어요 사물함에도 없어요

신문지 없어요, 탬버린 없는데요, 글쓰기 공책 없어요

아 진짜, 엄마가 안 챙겨줬단말예요

 

뒤늦게 문 열고 슬며시 들어와 앉으면서

안 깨워줘서요

책장만 몇 장씩 앞으로 뒤로 넘기고 앉았다가

스르륵 엎드려 눈만 꾸무럭꾸머럭

잠 와요

 

현규야, 니를 어째야겠노?

내가 뭘 도와주꼬?

나이 여덟살, 벌써 저토록 지치게 하는 건 뭘까?

 

선생님 있잖아요

아, 현규야.

처음이다.

드디어 먼저 말을 걸어주다니

 

전에전에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잖아요.

어제 절에 가서 제사 지냈거든요

 

근데요오 고모가 용돈줬어요

우리 현규가 할배 모시고 잔다고 그라면서

으이구 이뿐 자슥 하면서요

 

또 또 삼촌이가요오

우리 현규 큰일하네 하면서 삼천원 줬어요

 

근데요 우리 할아버지가 혼자 못 산다고해서

내가 할아버지집에서 같이 살잖아요

근데요

고모랑 삼촌이가 용돈도 주고 막 그라니까요

내가 진짜로 큰일하는 거 같죠

내가 진짜로 큰일하는 거 맞아요?

 

아, 현규야.

그럼, 큰일하지.

혼자 덩그라니 남은 할아버지 옆에서

니가 정말 큰일하는 거다.

 

나는요 할아버지하고 자는 거 밖에 안 하거든요

할아버지가요 밥하고요 양말도 찾아주고요

또 홍시도 살살 까주고 그라거든요

할아버지가 다하는데

 

니가 이렇게 빛나는 아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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