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재불 야야 이야기

사진 한 장

야야선미 2013. 10. 7. 19:17

사진 한 장

 

해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서쪽 하늘가가 불그스름한가 싶더니 금세 어둠살이 좁은 마당 가득 내려앉았다. 엄마는 딸네가 들어서는 줄도 모르고 어스름한 마당가에 앉아 화분을 들여다보고 앉았다.

해도 저무는데 뭐 하십니꺼?”

화분마다 서너 대씩 실하게 자란 대국, 엄마는 가운데 올찬 봉오리만 남기고 곁순에 붙은 자잘한 봉오리를 떼어내고 있다.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온다.

서너 해 전 늦은 가을 어느 저녁. 마루로 마당으로 들락날락 국화분을 힘겹게 들여다 놓던 엄마가 그랬다.

내가 또 이거를 하머 내가 국화다.”

하얀 꽃송이가 주먹보다 크게 부푼 대국 화분을 들고 너 왔냐?’ 말보다 먼저 툭 던지던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섭섭함과 아쉬움과 그리고 옅게 묻어나던 원망.

할마씨, 또 국화를 키우면 국화라카더마는, 아직도 국화분을 끼고 삽니꺼?”

그러이이 참! 그라머 이래 산 거를 내삐리겠나 우야겠노? 봄만 되면 새파라이 올라오는 넘을.”

썰렁한 마루에 올라 불을 켠다. 덩그러니 집만 크게 지어놓고 엄마 아버지 허리는 자꾸 구부러지고, 날이 갈수록 썰렁한 기운만 빈 구석구석을 채워가는 것 같다.

엄마 인자 보일러도 켜야 되겠는데.”

영감 할마이 둘이 살민서 하는 거 뭐 있다꼬. 밥 일찍 해 묵고 자리 깔고 누우면 되는데, 보일러는 무신. 안죽 불 안 넣어도 아무 탈 없다.”

이래 냉골이 잠이 오나. 나는 방바닥이 차가우면 등이 시럽어서 잡을 몬 자겠던데

아아도 어리다가 말았는갑다. 요것가꼬 등이 시럽니 우짜니 캐쌓노?”

흐흐흐 엄마한테 그말 오랜만에 듣는다. ‘아아가 어리다가 말았나흐흐

방바닥에 손을 짚어보며 수선을 피우는데 한 옆에 밀쳐둔 낡은 와이셔츠 상자 하나. 또 울컥 무엇이 치받아 올라온다.

할마씨……

빛바랜 사진 꺼내 들고 혼자 쓸쓸하게 한 나절을 견뎠으리라. 미처 담아두지 못하고 방바닥에 깔려있는 나달나달 닳은 흑백 사진들 몇 장 눈에 들어온다. 액자에 자잘한 흑백 사진들 다닥다닥 끼워 넣어 오랫동안 대청마루에 붙어 있었던 사진들. 이젠 그 액자도 없어지고 이 와이셔츠 상자에 꼭꼭 들어앉았다 .빛이 바래다 못해 검은 색 가시고 누렇게 바랜 채로.

엄마, 이 사진은 진짜 언제 찍었어예? 이거는 진짜 말 안 해 주시데?”

그기 뭐시 그리 알고 싶노?”

뭔 비밀이라도 되는 거 맨치로 말을 안 하이 더 궁금하지예.”

어렸을 때부터 물어도 그저 웃기만 하던 사진. 엄마는 한복을 곱게 입고, 아들 넷은 똑같은 옷을 해 입혔다. 뒤에 그림이나 앉은 의자를 보면 사진관에 가서 찍은 듯한데. 바로 위 오빠가 엄마 무릎에 앉은 아기인 걸 보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고.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사진관까지 가서 사진 찍을 리도 없는데. 사십 년 동안 물어도 말해 주지 않은 사진 한 장.

죽을라꼬 그랬다 아이가. 죽기 전에 사진이라도 하나 남가 놓을라꼬.”

에에에?”

그렇게 물어도 대답 않더니, 대뜸 내지르듯이 한 마디.

죽을라꼬 마음묵고 찍었다카이.”

할마씨! 뚝뚝하이 말없는 양반이라는 건 알지만, ‘죽을라 캤던이야기를 이래 불쑥 던지다니.

이 사진을 보고도 인자 아무렇지도 않은 거 보이…… 나이 들어 좋은 거솓 있다. 나이 들면 좋은 거 하나 없을 거 같아도.”

빙긋이 웃는 엄마 얼굴이 흔들림이 없다. 평안한 얼굴. 그래 나도 가끔 그리 싶을 때가 있지.

옷까지 이래 똑같이 해 입히가 사진까지 찍어놓고 죽을라 캤다고예?”

그거 진시장 가서 천 떠다가 내가 해 입힌 기다.”

우리 엄마도 죽을라고 할 때가 있었다고?’

아래로 시동생 시누이 줄줄이, 거기다 배다른 시동생 까지 둘. 넉넉지 못한 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힘이야 얼마나 들었을까. 대학 나와 선생하는 신랑감, 최고 신랑감 만났다고 동네 부러움을 안고 시집왔건만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본 엄마는 또 얼마나 평생 동안 주눅이 들었을까. 빠듯한 살림에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세 분 병수발만 20년이 된다더니 그 힘들고 속 끓인 세월이 오죽했을까.

짧은 시간에 엄마 살아온 세월을 휙 짚어보아도 정말 고단하고 눈물겨운 삶이었지. 그래도 엄마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동네에서 집안에서 꼿꼿하다 못해 도도한 참산댁이란 별명을 얻을 만치 엄마는 여장부처럼 살았지 않나.

너거 아버지가 저래도 젊었을 때는 여자가 마이 따랐던 기라.”

아아아 엄마……

이 말만 해도 금세 가슴이 아릿해진다. 무슨 일이었을지 듣지 않아도 그냥 가슴이 쩌릿하다. 그래서 하나 있는 딸, 내한테 그런 말을 주문처럼 했구나.

니는 공부 할만치 해서 남자들하고 똑같이 대접받고 살아라.”

남자들하고 똑같이 일하고 남자들하고 똑같이 회식도 하고. 술도 쫌 무도 된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인데 남자는 묵어도 되고 여자는 와 안 될 끼고.”

술에 못 이기도록 묵으라는 말은 아이다. 술한테 이길 만치는 묵어도 된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대접받으면서 당당하이 살아라. 그랄라카면 여자도 공부를 해야 된다. 공부하고! 여자라꼬 몸 사리지 말고 똑같이 일하고 그라고 똑같이 대접받고.”

철들 무렵부터 엄마가 날 붙잡고 하던 그 말들. 그 말은 곧 엄마 스스로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죽을라꼬? 아버지가 여자 생겼다고 고마 살자 합디꺼?”

너거 아버지가 그럴 사람도 못 된다. 그냥 내가 몬 살겠더라.”

그래도 우리 엄마는 우짜든지 기다리면서, 속을 썩어도 참고 살라했을 거 같은데 우예 죽을 생각을 했어예?”

그러이! 그때는 나도 한창 나이던 갑다. 사진 저거 한 장 남가 놓고 죽을라 캤지. 내 죽고 나면 이 알밤 것은 자석들 사진 보미 피 토하고 울어라꼬.”

엄마 죽고 나면 아버지가 피 토하미 울면, 그기 뭔 소용있다고

그러이 내가 어리석지. 사진관에 사진 찍을 때까지는 그래도 그 생각만 했다. 며칠 있다가 사진 찾아와서 보니까 내가 고마 못 죽겠는기라.”

엄마는 닳고 닳은 사진을 어루만지며 긴 숨을 내쉰다.

이 알밤겉은 새끼들 놔두고 죽으면 에미도 아이다 싶어서 죽을 수가 있어야지. 콱 죽어뿔라 카는 심정은 내 한풀이지. 이 자슥들한테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긴지, 이래 빵그래 웃는 사진을 보이 고마 죽을 수가 없는 기라.”

아무 말도 덧붙일 수가 없어 나도 사진만 만지작거린다.

놨으면 키아냐지. 내 속 시린다꼬 죽어뿌머 에미가 아이지.”

그라면 아버지 용서해 줐습니꺼?”

용서고 머시고 뭐 있노. 그냥 사는 기지.”

용서도 안 되는데 같이 살아집디꺼?”

한 번 깨진 바가지 기워놓으면 그냥저냥 쓰긴 쓰지. 처음 맨치로야 되더나 어데.”

그러면 앙금을 안고 살았단 말이예요?”

앙금도 아이고……. 내가 오매불망 너거 아버지만 치다보고 살던 맴이 그때부터는 그래 안 되더라는 말이지. 너거 아버지는 너거 아버지 인생이 있으이 저래 살고, 나도 내 인생이라카는 기 또 있지 싶더라.”

그라면 엄마 인생은 뭐였어요? 찾았어요?”

찾기는 뭐. 나는 한평생 자석들 키우미 살아라카는 건 갑다 하고 살았지.”

안 억울했어예?”

억울하기는. 한 번썩 그럴 때는 있더라. 나는 이래 살아라꼬 맨들어진 인생인가 싶대. 와 내 인생은 이래 살아라꼬 맨들어짔노 싶어서 한숨도 쉴 때도 있었지.”

엄마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이 지나간다.

그래도 나이 드니 좋더라. 가슴에 찬바람도 안 지나가고, 들볶이고 속 끓이미 잠을 몬 자는 일도 없고.”

, 그래. 엄마에게 지나간 수많은 고비들이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다고, 학교 문 안에라도 들어가 봤으면 하늘에 꺼라도 내려묵겠다던 우리 엄마.

봐라, 가실이 되니까 볕도 누그러지고 태풍도 장마도 다 지나가고 나는 이때가 참 좋다.”

엄마는 흩어진 사진을 주워 상자에 담아 장롱 위로 올린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팽댕이 맨치로 쫓아 댕기민서 들에고 밭에고 안 하는 일 없이 소겉이 일하다가, 그래도 이맘때는 이래 꽃도 들여다보고, 키아서 너거들한테 하나썩 들려 보낼 수도 있고.”

이거는 잘 언더라. 뜨거운 땡빛도 지나고 태풍도 지나고 가실볕이 참 안 좋나. 불덩이겉이 끓던 속도 다 사그라지고. 너거 아버지도 인자 진정으로 애닯고 걱정이 되고

엄마는 마당가에 졸로리 놓인 국화분을 내다보면서 또 엷게 웃는다.

이 가을! 돌아와 국화 앞에 앉은 누이니 뭐니 그 따위 시 한 줄 알 턱 없는 우리 엄마는 온몸으로 긴 삶의 속살들을 깨달아 저리도 평온한 낯빛으로 웃는다. , 사랑하는 울 엄마, 국화꽃 참산댁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