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5일 / 아침엔 아직도 차가운 아침바람이 몸을 웅크리게 하더니 낮엔 제법 따뜻하다. 그런데 푸른빛 없이 부연 하늘, 오늘밤 보름달은 볼 수 있으려나?
<재미있어요, 잘 읽었어요!>
국어시간, “으악, 도깨비다!”를 읽을 차례.
어제는 아이들이 읽었으니 오늘은 내가 한번 읽어보기로.
“자아, 야야가 읽을 테니까 잘 읽는지, 뭐 틀리게 읽는 건 없는지 잘 짚어가면서 보세요.”
하하, 넌 이가 빠져서 수박 먹기 좋겠다.
뻐드렁이가 눈을 흘기면서 말하였어요.
그럼 수박 좀 가져와봐. 이 잘난 척 왕자야!
아휴, 시끄러워. 낮잠 좀 자게 조용히 해.
“흐흐 재밌다.”
한 바닥 읽고 두 바닥 읽고 다음 장을 넘기는데 혁진이가 벙글거리며 책장을 넘긴다.
“재밌게 잘 읽지?”
옆에 모둠 연강이가 짝을 돌아보며 속삭인다.
‘뭐어? 재미있다고?’
아아, 2학년 아이들은 이렇구나. 제 마음을 숨기지도 않고. 속에 뭐가 들앉았는지도 모르게 입 꾹 다물고 있는 큰 아이들하고는 영 딴판일세.
갑자기 힘이 솟는다. 좀 쑥스러워서 살살 하던 걸 이젠 자신만만하게 읽는다.
없어졌어. 멋쟁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
뭐라고?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이 자꾸 옹기를 가져가더니 멋쟁이도 데려간 것 같아.
빨리 도망가자! 안 그러면 우리도 멋쟁이처럼 잡혀갈 거야.
그럼 멋쟁이를 내버려 두자는 말이야?
마치 연극배우처럼 놀란 소리로도 읽다가 화난 듯이 큰소리도 나온다. 나도 이제 책속의 장승들처럼 흥분되었다. 목이 좀 칼칼하지만 끝까지 소리 지르며 읽는다. 아이들이 재미있다지 않아.
자, 어서 멋쟁이를 찾아보자!
“아, 재미있다.”
다 읽고 나니 아이들이 아쉬운 듯 책을 내려놓는다. 나도 모르게 뿌듯한 웃음이 흐른다.
이제 이야기에 대해 서로 생각 나누고, 모둠끼리 역할 나누어 실감나게 읽어보고. 다시 교과서로 돌아간다.
“아까 장승들이 친구 멋쟁이를 찾아 나섰지요? 그 뒤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요?”
“흐음, 잘 찾았겠죠?”
“그럴까요?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또 읽어봅시다. 이번엔 누가 읽을까?”
“샘이 읽어주세요.”
“또? 나 아까 큰소리로 읽었더니 목이 좀 아픈데.”
“샘이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 그럼 이번에는 그냥 밋밋하게 읽을까?”
“아니요오오오”
“자아 봐봐. 이렇게”
그러고는 정말 밋밋하게 맛대가리 없이 두어 줄 읽는다. 높낮이 똑같이, 바탕글 이야기글 가리지 않고 똑같이.
“에에에에 그렇게 말고요.”
“그럼, 어떻게?”
“아까처럼요.”
“아까는 어떻게 읽었는데?”
“말하는 것처럼요.”
“말하는 것처럼 읽으면 잘 읽은 거예요?”
“실감나게 읽었잖아요.”
“근데 목 아프다니까”
“선생님, 아까 잘 읽었어요. 자아 손뼈어억”
여기저기 보채더니 몇몇이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교실은 어느새 손뼉에 환호에.
“잘 읽었어요.”
“또 읽어 주세요.”
이럴 수가. 2학년 아이들은 원래 이렇게 예쁜가?
“그래, 그럼 읽을게요. 잘 들어주세요.”
책을 읽으며 곁눈질로 아이들 얼굴들을 살핀다. 하나같이 포옥 빠져서 책을 보고 있다. 목이 좀 칼칼하면 어때! 더 신나게 글을 읽는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포옥 빠져서 들어주는 걸. 아무렴, 이렇게 이쁜 아이들이 날더러 잘 읽는다고 칭찬을 해 주잖아. 나중에 물 한 잔 마시면 목은 낫는데 뭘.
아침마다 책 읽어주기로 한 거, 정말 잘 될 거 같다. 올해, 시작이 참 좋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가의 토마토 (0) | 2015.06.29 |
---|---|
야야샘, 오늘 아침 편지 없네요. (0) | 2015.06.04 |
삶을 가꾸는 글쓰기 / 봉다리 하나만 있어도 잘 논다 (0) | 2013.11.15 |
글을 쓰고 함께 읽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자란다 (0) | 2012.12.11 |
내 말 좀 써 주세요 그 뒤- 낙인찍다 (0) | 2012.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