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네가 사는 이야기

단순하게 더디게 소박하게, 몸은 가볍게

야야선미 2010. 10. 23. 22:30

  지난해 여름 방학 앞두고, 우리 식구 모두 단식 한 번 해보자고 말을 꺼냈다. 내 혼자 시작해 봐야 끝까지 해내기 어려울 거라. 밥 챙겨주느라 먹을거리 만지다 보면 뭘 집어먹어도 먹게 될 것이고. 단식하는 동안이라도 밥 안 챙겨 주고 자유롭고 싶은 속셈도 좀 있었고. 잔뜩 벼르고 꺼낸 말인데 모두 다 그러마고 했다. 생각 밖이었다. 내가 하자고 하자고 들러붙어도 영우나 서인이는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리 순순히 따라 나서다니.

까닭이야 다 달랐다. 아이들 아바이는 갈수록 나오는 배가 민망해서, 그리고 혈압이 자꾸 올라가는 것도 같고. 이젠 좀 심각하게 몸 관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서인이는 좀 더 날씬해지고 싶어서, 무엇보다 ‘저주받은 하체’ 때문에. 영우도 덕분에 살 좀 빼고 보기 좋은 잔근육으로 채워 본다고 했다. 그런저런 까닭들이 맘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겠다는 게 어디냐? 함께 단식하다 보면 제각각 자기만큼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겠지. 그러는 나는? 나는 까닭도 없이 아픈 날이 많고 오후만 되면 착 까라지는 몸 때문에. 아무래도 이것저것 마구 먹어댄 것이 화근이지 싶어서. 그래서 “확!” 비우고 싶어서.

날을 잡았다. 처음부터 순조로울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날 잡는 것만도 아주 애먹었다. 아이들 아바이 연수랑 출장 가는 날을 빨간 줄로 긋고, 영우 여행 간다는 날과 서인이 캠프 가는 날도 빼 놓고. 네 식구가 다함께 집에 있을 날이 일 주일도 남지 않았다. 내 약속이나 일정은 그때까지 갖다 대지도 못했는데. 단식을 위해 양보해도 될 일, 꼭 나가야 하는 날을 다시 꼽았다. 열흘하고도 이틀이 남았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았다. ‘우리가 참 많은 일들에 목매여 끼어들어 있구나. 사는 게 뭐 이렇게 복잡한지. 사람 만나고 모임에 끼이는 것도 뱃살 빼듯이 좀 줄여야겠어.’

필요한 것들도 챙겼다. 이런저런 책도 보고, 그동안 주워들으면서 메모한 것들도 찾아보고, 단식 안내 사이트도 찾아보고. 효소부터 주문했다. 우리는 효소단식을 하기로 했다. 처음이라서 하나도 안 먹는 건 조금 겁도 나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음은 감식부터 단식, 회복식까지 먹을거리 식단을 짜고 단식일지도 만들었다. 일주일 단식에 감식기간과 회복식 기간까지 하니 스무 닷새쯤 걸린다. 그 동안에 먹을 것도 챙겼다. 유기농 현미와 채소, 과일도 조금 샀다. 굳이 비싼 유기농 먹을거리를 사 오면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아귀처럼 먹어대어서 결국엔 단식을 해야 할 만큼 몸 망가뜨리고, 이제 그 몸 살리겠다고 유기농 먹을거리 찾아 봉지 봉지 사다 나르고. 부끄러운 짓 많이도 하고 산다 싶었다. 마그밀도 한 통 사고, 회충약까지 사다 놓았다.

영우가 식단표와 단식일지를 문에 붙였다. 먹을거리, 먹을 양, 먹는 날을 꼼꼼히 써 넣었다. 딱 정해진 양만큼만 먹자고 다짐했다. 그 옆에 칸을 더 만들었다. 단식하면서 하루하루 드는 생각도 적기로 했다. 몸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들도 적어야지. 서인이랑 영우는 몸무게도 하루하루 적어보자고 한 칸 더 그렸다. 그러고 보니 제법 단식원 분위기 난다고 큭큭거리면서 ‘무지개 단식원’ 문을 열었다.

이제 시작. “아침 먹자!” 하고 효소 한 잔씩. “점심 먹자!” 하고 효소 한 잔씩. 저녁에 또 효소 마시고. 마음 다잡았던 것만큼 어렵지도 않고 힘도 들지 않았다. 서인이도 잘 따라 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몸이 신호를 보냈다. 오줌이며 똥이며 온몸에서 빠져 나오는 것들 냄새가 참 지독했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자고 일어나면 “똥 인사” 를 했다.

“니, 오늘 똥 눴나? 나는 아직도 소식이 없네.”

“냄새 진짜 독하제?”

“똥 억수로 마이 안 나오더나? 우리 몸에 똥덩어리가 그리 많이 들어 있었다니, 진짜 놀랍다야.”

“똥 색깔 어떻더노? 나는 똥이 시퍼렇게 거무튀튀한 게, 와아 똥 색깔 그런 거 처음 본대이.”

“인자 똥 안 나온다. 물만 나오는데?”

식구들하고 똥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해 본 것도 처음이지 싶었다. 사나흘 쯤 되니 가만있어도 몸에서 냄새가 났다.

“엄마, 하수구 썩는 냄새 나는 거 같죠?”

아이들이 팔을 들어 올려 킁킁대다가 옆에 사람 겨드랑이에 대고 킁킁킁, 그러다가 킥킥킥.

“오빠야, 내 등에 등드름 없어진 거 보이나?”

“영우, 니도 등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야.”

몸에 일어나는 반응 이야기 하는 게 하루 일처럼 되었다. 사나흘 지나면서 몸무게가 줄었다. 서인이랑 영우는 그때부터 아주 신바람 난 듯 아침저녁으로 저울에 올라섰다. 벽에 붙인 표에 써 넣는 것도 아주 즐겁게.

“야아들아, 나는 손가락 마디마디 아픈 게 싹 나았다. 아침에 일어나도 붓지도 않아. 봐라 봐라 손가락 날씬하제?”

손을 좌악 펴 보이면서 자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부어 주먹이 쥐어지지 않던 손이 아주 가벼워졌다. 그것 하나만 해도 충분했다.

시간이 많이도 남았다. 아침 점심 끼니 걱정 않고 효소 타 놓은 것 한 잔씩이면 끝. 컵 네 개 씻으면 설거지도 끝. 사는 것이 그렇게 한갓질 수가 없었다. 뭘 해 먹을까, 뭘 사오랴 걱정 않지. 분주하게 음식 장만하지 않아도 돼, 설거지할거라고 끙끙거리며 무거운 몸 일으키지 않아도 돼. 하루 24시간 온전히 ‘사는 것처럼’ 살았다. 마주보고 이야기 하다가, 보고 싶은 책 보다가, 졸리면 한숨 자고. 목마르면 물 한잔 마시고. 창가에 나란히 앉아 넘어가는 해도 보고.

해거름에는 다 함께 강가에 나갔다. 불그스름한 저녁놀 아래서 어린 아이처럼 소리 지르면서 내달았다가, 고요한 맥도강을 끼고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느릿느릿 태평스레 걸으면서 사는 이야기며 동무들 이야기며. 우리 네 식구 이렇게 한갓지게 지냈던 적이 얼마나 될까? 손꼽아 보아도 별로 없었다. 다들 무엇에 미쳐 그리 바쁘게 살았던지.

집안일을 하는 대신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밖에 나갈 약속을 줄인 덕에 보름 가까이 온 식구가 한데 엉겨있으니 이런저런 못할 이야기가 없지.

“먹는 걸 안 하니까, 이렇게 시간도 많고 여유가 있지?”

“그러게요. 엄마가 편안하니까 그런가? 짜증이 없어진 것 같지 않아요?”

“맞다, 맞아. 내가 생각해도 짜증도 안 내고 잘 웃고 그러네. 노래도 많이 하지?”

아이들 아바이가 거들었다.

“일을 줄여야 해. 몸을 그만 괴롭히면 인간이 절로 인간다워진다니까.”

그 말이 맞다. 나도 맞장구쳤다.

“더 많이 갖겠다고 욕심 부리니까 돈 많이 필요하고, 돈 많이 벌려니까 일 많이 해야 하고. 그러니 힘겹고 짜증나고. 자연히 곁에 있는 사람들 마음 상하고. 우리 인간들이 무얼 위해서 그리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되는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먹을 것 딱 끊고, 가장 단순하게 지내보자 하던 터라 더 공감되는 것일까.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넷이 모두 공감하고 한꺼번에 고개를 끄덕인 일도 흔치 않았는데.

서인이한테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권했더니 푹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더니, 한 꼭지씩 넘어갈 때마다 달려와서 종알종알 끝없이 풀어놓았다.

“엄마, 맛있고 부드러운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짓들이 너무 잔인해요.”

“고기, 동물, 가축. 그런 거는 없어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상품 밖에 없는 거 같아요.”

“고기 1kg을 만들기 위해서 들어가는 사료나 물도 엄청나네요.”

“진짜 육식이 세상을 다 망치는 거네요. 그 이상한 짓들이 다 인간에게 돌아올 거다, 그죠?”

“나 이제 고기 안 먹을래.”

책 한 권 읽었다고 고기를 안 먹기야 하랴. 그런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것 또한 단식 덕분이리라. 다른 책을 펴면서 오빠도 읽으라고 주었다.  “야, 나는 그거 옛날에 읽었다. 오마니 등쌀에.” 그러면서 영우도 다시 펴들었다.

영우가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을 끝까지 읽어 준 것도 참 고마웠다. 군대 제대하고 ‘차 한 대만 사고’ 싶어서 아르바이트 하던 녀석이라 더욱 반가웠다. 저녁 효소 한잔씩 마시고 영우가 말했다.

“자동차가 생기면서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거요. 좀 공감되는 데요.”

귀가 번쩍! 기다렸다.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하고 아버지 이야기하실 때 그냥 들어 넘겼는데요. 지금 읽으니까 이 사람들처럼 똑같이는 못 살아도 좀 더디게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예를 들면?”

“아니 뭐, 너무 진지하게 듣지 마세요. 현대인들이 너무 편안하고 편리한 걸 찾다가 자기를 잃고, 가족을 위해 일한다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잃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는 거죠 뭐.”

“그 말은 나도 인정.”

“또 그런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거. 없어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침내 회복식에 들어갔다. 아, 달콤한 그리고 고마운 먹을거리들! 커피 잔 반쯤으로 시작한 회복식은 우리에게 커다란 즐거움과 고마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혀로 핥듯이 싹싹 닦아먹으면서 느끼는 그 달콤한 맛이란. 죽염만 아주 조금 넣고 멀겋게 끓인 현미 미음 반잔. 그것만 먹어도 충분히 배부르고 만족하다는 것. 우리는 정말 경건하게 정성껏 미음 그릇을 비웠다.

“이런 멀건 죽도 녹여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서인이가 정말 미음을 녹여 먹듯이 입에 넣고 오래오래 머금고 있었다. 고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걱정했던 영우도 현미 미음, 현미채소죽, 현미밥, 그것들만으로도 정말 맛있게 싹싹 비웠다. 현미밥으로 넘어 갔을 때, 서인이가 그랬다.

“진짜 우리가 얼마나 많이많이 먹고 살았는지 알겠어요. 이렇게만 먹어도 살 수 있네요. 옛날에 엄마가 그런 말 했을 때는 몰랐는데.”

우리가 먹는 것에 얼마나 목매고 있는지. 맛있는 것 찾아먹으러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낭비인지. 이렇게 안 먹고 덜 먹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입맛’을 이겨내면 그 어떤 유혹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영우의 깨달음. 도 닦는 사람들이 왜 먹는 것을 절제하는지 알겠다고. 단식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면서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좋았다. 암 좋고말고.

몸이 정말 가볍고 상쾌해졌다. 얼굴 맑아진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얼마나 많은 찌꺼기들이 우리 몸에 쌓여 독을 만들고 살았을지. 배부르게 먹고, 취하도록 마시면서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흥청망청, 몸도 의지도 흐물거렸을 게다. 단식을 하면서, 먹는 것 뿐 아니라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하는 욕심이나 미련들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단식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가득 얻게 된 셈이었다. 영우나 서인이, 그리고 우리 어른들도. 단식하고 회복식을 하는 동안 먹는 것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 가볍게 단순하게 소박하게.  단식이 그것들을 온몸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회복식 마지막 무렵에 영우는 친구 몇몇이랑 여행하고 왔다.

“어머니, 나도 할 때는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고기는 구워만 주고요, 술도 안 마셨어요. 하니까 되던데요.”

그 말만 들어도 기뻤다. 다 끝난 뒤에 또 전처럼 돌아가더라도 말이지. 그런 것 한번 느껴보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져본 걸로도 만족한 단식이었다.

그러구러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우리 또 흐지부지해졌는데, 겨울방학 때 한 번 더할까?”

“난 안해요.”

“어, 잘 하는 것 같더니. 힘들었나?”

“다 좋은데, 가슴이 작아져서 안 되겠어요. 단식하고 나서 가슴이 너무 작아졌다고요, 으흐흑.”

“그래, 그거라면 우리가 양보한다. 서인이 니는 빠져라.”

나는 가슴이 큰 건 아니지만, 단식은 또 해야겠다. 몸에 살도 빼고, 아직도 덕지덕지 붙은 게으름과 타성, 기름기 꽉 찬 욕심덩어리. 빼내고 덜어낼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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