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네가 사는 이야기

봄날

야야선미 2011. 4. 13. 13:46

 

신선탕 옆 고샅길,

아이들이 쓰던 낡은 소풍자리 펴 깔고 봄나물 몇 무더기 나란히 놓였다.

맛나분식 할매가 조막조막 놓은 나물 무더기를 다독거린다.

쑥 무더기, 고들빼기, 달래.

냉이무더기를 다독거리다가 지푸라기를 찾아내 멀리 던진다.

씬냉이는 전잎을 떼고 뿌리를 싹싹 훑어 또 한 무더기 놓는다.

달래무더기를 달싹달싹 들어보더니 옆에 소쿠리에서 한 자밤 꺼내 얹는다.

한 번 더 들어보고 이번에는 한 번 두 번, 두 자밤 더 얹는다.


목욕탕에서 뛰어나온 사내아이 둘이 해해닥거리고 가댁질하다

할매 발치에 넘어질듯 기우뚱거린다.

나물무더기 사이로 발이 쑥 들어왔다 나간다.

"이노무 자슥들, 나물 밟을라."

나물무더기를 앉은자리 앞으로 끌어당긴다.


고즈늑한 고샅에 움직이는 거라곤 저 사내아이 둘 뿐인 듯,

햇살도 얇게 퍼져 내리고

바람이 이는지 돌담에 비스듬히 자란 수양버들 가지가 간들간들,

길가에 떨어진 비닐봉다리를 잠깐 바스락 깨우고 지나간다.


신선머리방 아저씨가 아이를 태우더니 차를 뒤로뒤로 뺀다.

할매가 앉은자리 앞으로 나물 무더리를 바쁘게 끌어당기지만

미처 당겨 넣지 못한 고들빼기가 반이나 깔려버렸다.

색깔바랜 빨간 플라스틱 소쿠리도 한 쪽이 빠작 바스러졌다.

한번 멈추지도 앉고 차는 떠났다.


"이거 깨져서 우야노? 몬 쓰게 됐네예."

소쿠리를 주워다 할매 옆으로 놓아드리지만 보지도 않고 고들빼기 무더기를 끌어당긴다.

"반치나 내삐리야 되겠다."

바퀴에 깔린 고들빼기를 덜어내고 다듬어 놓은 고들빼기를 더 꺼내 얹는다.


"오늘은 머구도 나왔네예."

아직은 젖먹이 오무린 손바닥만한 머위 잎을 만지면서 할매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새댁이, 요새는 와 그래 안 보이더노?"

할매가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일주일만에 문 밖에 첨 나왔어예. 나오기가 싫어서.”

“젊으이가……”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자루를 벌리고 머위를 찾아 무더기 위에 한 줌 더 얹으면서.

"더 놔두면 많이 클낀데, 이 때는 이 때 대로 맛나거덩.

꼭 이 때 찾는 삼들이 있다카이."

“물렁하이 삶아서 된장에 무쳐묵는 거 좋아하는 할매가 있는데……”

할매는 머위를 한 줌 더 꺼내 얹는다.

머위 무더기가 더 커졌다.


할매는 뒤에 있던 꺼먼 비닐 봉다리를 끌어다가 가랑파를 한 움큼 꺼내 까기 시작한다.

"파도 이러키나 컸네예."

나도 몇 포기 끌어다 깐다.

파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우짜꼬, 저 할매 살아있었던교?"

맛나분식 할매가 벌떡 일어선다.

한번 일어날 때마다 끄응끙 앓는 소리를 하는 맛나분식 할매가.


고샅 저 쪽에 머리 하얀 할매가 아기유모차를 밀고 나타났다.

유모차를 미는 것이 아니라 낡은 유모차에 온몸을 실었다.

앞 바퀴 하나는 망가졌는지 돌아가지도 않아 자꾸 한쪽으로 옆걸음을 간다.

달려가서 함께 미는데 목에서 크르륵 카르릉 가래 끓는 소리.

유모차 할매는 두꺼운 누비저고리를 걸치고

머리는 짱똥하게 잘라 뒤꼭지에는 새집을 지었다.


맛나분식 할매는 쑥 무더기랑 냉이 무더기를 획 쓸어서 한쪽으로 치우고

한쪽에 서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다 놓는다.

"할매요, 할매요. 날이 풀맀는데도 안 나와서, 어이……"

맛나분식 할매는 어정쩡하게 구부리고 서서

새집 지은 머리를 쓸어주고

누비저고리 앞섶을 매만져주고

그러고도 가만 있지 못하고 유모차 할매 손을 만지작거린다.

"머구가 이래 크도록 안 나오길래

고마 겨울 못 넘긴 줄 알았다 아이요."

유모차 할매는 입술만 두어번 달싹하고 숨만 크르륵크르렁

"저짝 바늘집 할매는 고마 세상 베맀다 아이요.

할매도 세상 베리고 갔나 캤더마는."

“머구 나오고부터…… 할매 나오나 카고 ……”

두 할매는 더 말이 없이 손만 꼭 쥔다.


신선 머리방 문이 열리고

한마음 수퍼 아줌마가 꼬불꼬불한 파마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나온다.

바람이 휘이 일더니

아까 그 비닐봉지가 한번 팔랑 낮게 날더니 그대로 털썩 가라앉는다. (201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