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맷돌 외 / 이문구

야야선미 2011. 1. 26. 11:07

맷돌 / 이문구


예전엔 생활도구였어.

콩과 메밀을 갈아 두부랑 묵을 쑤고

팥과 녹두를 타서 떡을 했지.

밀을 갈면 전을 부치고

엿기름을 타면 엿을 고았지.

보리죽이며 귀리수제비며

부잣집도 가난한 집도

이 맷돌 없이는 못 살았어.

당연히 툇마루나 대청의 터줏대감으로

마당은커녕 뜰도 밟지 않고 지냈지.

이가 닳아서 덜 먹으면

매죄료 장수가 정으로 쪼아서

언제나 살갑게 돌아갔는데,

지금은 민속 공예품의 하나.

그래서 이 큰 음식점의 마당에 박혀

드나드는 손님들 섬돌 노릇으로

닳고 닳아서 납작해지고

밟히고 밟혀 매끄럽도록

눈 비 다 맞아 가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지.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전집 24>



꾸지뽕나무 / 이문구


그림을 잘 그린다면

집 앞의 밭둑에

한 백 살쯤 된다는

저 꾸지뽕나무를 그려보고 싶다.


해마다 쑥이 셀 무렵엔

벌통의 벌이 나눠져

독립을 하는데

독립하러 나온 벌떼는

꼭 저 나뭇가지에서 모였다.

새 여왕벌들은 왜

저 고목나무를 좋아할까

저 나무를 그리는 동안에

어쩌면 그 이유를

알아낼지도 모른다.    ---<이상한 아빠 1> <전집 24>




탱자나무 / 이문구


탱자나무는

믿을 수가 없다.

철조망보다 사나운

가시투성이

그래서 울타리밖에

될 수 없는데

과일보다 예쁘고

과일보다 향긋한

탱자를 기른다.    ---<개구쟁이 산복이> <이상한 아빠 2> <전집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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