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 이문구
예전엔 생활도구였어.
콩과 메밀을 갈아 두부랑 묵을 쑤고
팥과 녹두를 타서 떡을 했지.
밀을 갈면 전을 부치고
엿기름을 타면 엿을 고았지.
보리죽이며 귀리수제비며
부잣집도 가난한 집도
이 맷돌 없이는 못 살았어.
당연히 툇마루나 대청의 터줏대감으로
마당은커녕 뜰도 밟지 않고 지냈지.
이가 닳아서 덜 먹으면
매죄료 장수가 정으로 쪼아서
언제나 살갑게 돌아갔는데,
지금은 민속 공예품의 하나.
그래서 이 큰 음식점의 마당에 박혀
드나드는 손님들 섬돌 노릇으로
닳고 닳아서 납작해지고
밟히고 밟혀 매끄럽도록
눈 비 다 맞아 가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지.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전집 24>
꾸지뽕나무 / 이문구
그림을 잘 그린다면
집 앞의 밭둑에
한 백 살쯤 된다는
저 꾸지뽕나무를 그려보고 싶다.
해마다 쑥이 셀 무렵엔
벌통의 벌이 나눠져
독립을 하는데
독립하러 나온 벌떼는
꼭 저 나뭇가지에서 모였다.
새 여왕벌들은 왜
저 고목나무를 좋아할까
저 나무를 그리는 동안에
어쩌면 그 이유를
알아낼지도 모른다. ---<이상한 아빠 1> <전집 24>
탱자나무 / 이문구
탱자나무는
믿을 수가 없다.
철조망보다 사나운
가시투성이
그래서 울타리밖에
될 수 없는데
과일보다 예쁘고
과일보다 향긋한
탱자를 기른다. ---<개구쟁이 산복이> <이상한 아빠 2> <전집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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