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 임길택
아버지는 가끔
하늘 올려다보며 말씀하셔요
햇빛이 없으면
이 세상 어떻게 될까
굴 속 걸어나올 때마다
점점 밝아지는 길 밟으며
세상 밖으로 나올 때마다
햇빛처럼 반가운 게 없대요
햇빛처럼 그리운 게
아무것도 없대요
탄을 캘 땐
까마득히 잊었다가도
굴 속을 빠져나올 때면
온 세상 햇빛으로 둘려싸였음을
온 세상 햇빛으로 빛나고 있음을
비로소 볼 수 있대요
비로소 느낄 수 있대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 임길택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똥 푸기 / 임길택
겨울을 나야 한다고
아버지
똥을 푸신다
지게에 지고
산밭 그 높은 데까지
져 나르신다
똥차가 못 오는
비탈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코를 막는다
똥이
대접 못 받는 세상이라며
아버지
허허 웃으신다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재중이네를 보니 / 임길택
돈이 없으면
안 쓰고
옷이 없으면
기워 입고
쌀이 없으면
굶기도 하며
할머니와 둘이서
살아가요
가난해도
어떻게든 살아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우리 선생님 / 임길택
오후만 되면
우리는 나머지 공부를 하러
졸졸 선생님을 따라다녀요
유치원 동생들에게
교실을 내주고서
교무실에도 가고
어떤 땐
교장실에도 데리고 가셔요
글씨도 모르는
불쌍한 아이들이 되어선 안 된다며
오후마다 우리를 이끌고
교실 찾기를 하셔요
오늘은
숙직실에서 나머지를 하는데
가르치다가
가르치다가
무릎 꿇고 엎드린 채
선생님이 잠이 드셨어요
그만 꼬박 잠이 드셨어요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다가
선생님이 깨어날까 봐
우리끼리 글씨 쓰기를 했어요
열심히 열심히 글씨를 썼어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초저녁 / 임길택
별이 뜬다
별들이 뜬다
탄바람에 하나도
날리지 않고
탄더미에 하나도
묻히지 않고
저탄장 산마루에
폐석 더미 위에
초저녁 별이 뜬다
꿈처럼 뜬다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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