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탄광마을 아이들>에서 / 임길택

야야선미 2011. 1. 26. 11:06

햇빛 / 임길택


아버지는 가끔

하늘 올려다보며 말씀하셔요


햇빛이 없으면

이 세상 어떻게 될까


굴 속 걸어나올 때마다

점점 밝아지는 길 밟으며

세상 밖으로 나올 때마다

햇빛처럼 반가운 게 없대요

햇빛처럼 그리운 게

아무것도 없대요


탄을 캘 땐

까마득히 잊었다가도

굴 속을 빠져나올 때면

온 세상 햇빛으로 둘려싸였음을

온 세상 햇빛으로 빛나고 있음을

비로소 볼 수 있대요

비로소 느낄 수 있대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 임길택


빗물에 패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는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똥 푸기 / 임길택


겨울을 나야 한다고

아버지

똥을 푸신다


지게에 지고

산밭 그 높은 데까지

져 나르신다


똥차가 못 오는

비탈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코를 막는다


똥이

대접 못 받는 세상이라며

아버지

허허 웃으신다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재중이네를 보니 / 임길택


돈이 없으면

안 쓰고


옷이 없으면

기워 입고


쌀이 없으면

굶기도 하며

할머니와 둘이서

살아가요


가난해도

어떻게든 살아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우리 선생님 / 임길택


오후만 되면

우리는 나머지 공부를 하러

졸졸 선생님을 따라다녀요


유치원 동생들에게

교실을 내주고서

교무실에도 가고

어떤 땐

교장실에도 데리고 가셔요

글씨도 모르는

불쌍한 아이들이 되어선 안 된다며

오후마다 우리를 이끌고

교실 찾기를 하셔요


오늘은

숙직실에서 나머지를 하는데

가르치다가

가르치다가

무릎 꿇고 엎드린 채

선생님이 잠이 드셨어요

그만 꼬박 잠이 드셨어요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다가

선생님이 깨어날까 봐

우리끼리 글씨 쓰기를 했어요

열심히 열심히 글씨를 썼어요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초저녁 / 임길택


별이 뜬다

별들이 뜬다


탄바람에 하나도

날리지 않고


탄더미에 하나도

묻히지 않고


저탄장 산마루에

폐석 더미 위에


초저녁 별이 뜬다

꿈처럼 뜬다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 1990)


 

 

'시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꽃>에서 / 권태응  (0) 2011.01.26
맷돌 외 / 이문구  (0) 2011.01.26
<할아버지 요강>에서 / 임길택  (0) 2011.01.26
<산골아이>에서 / 임길택  (0) 2011.01.26
<똥 누고 가는 새>에서 / 임길택  (0) 2011.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