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는 산마을에 산다

산마을고등학교 이야기 "서인이가 처음 번 돈"(세상 울타리가 학교요 모든 이가 스승인 것을)

야야선미 2012. 1. 20. 19:55

“엄마, 이거.”

아침 먹고 오빠랑 재잘거리고 놀다 건너오더니 하얀 봉투 하나를 내민다.

“뭔 데?”

“처음 번 돈은 엄마 드리는 거라던데.”

“처음 번 돈? 니가 돈을 벌었다고?”

“현장에 나가면 준대요. 실습비까지는 안 되고, 그냥 조금씩은 주는 거래요.”

어제까지 사흘 동안 건축사무소에 체험하고 왔다. 그럼 거기서 받은 돈?

“헉. 니는 거기 나가서 짐만 되고 그 분들한테 부담스럽기만 했을 건데. 글고 니가 배우러 간 건데 돈을 받았다고?”

“그러게요. 나도 좀 놀랍긴 했어요. 현장에서만 주는 거래요. 암튼 엄마가 쓰세요.”

단 돈 오 만원. 큰돈은 아니지만 제가 처음 번 돈이라고 쓱 내미는 저 모습. 스스로도 얼마나 뿌듯할까. 얼른 받았다. 나중에 몇 배로 용돈을 빼앗기더라도 저 뿌듯함을 망치고 싶진 않다.

하얀 봉투 속에 든 오만 원짜리 한 장. 고등학생 딸아이가 처음으로 벌어왔다고 자랑스레 내미는 돈. 저 녀석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한없이 그득해진다.

 

 

겨울방학하고 집에 오기 전에 야학에서 건축공부를 이끌어주시던 윤인석 선생님께 부탁했다고 했다. 건축사무소나 건축현장 같은 데를 직접 가서 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한번 해보고 싶은데, 어디 부산에도 교수님이 잘 아시는 곳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마침 선생님이 선뜻 알아보마고, 그리고 금방 어디어디를 가보라고 권해 주시더라면서, 아주 기대에 부풀어 전화를 했더랬지. 방학하고 오자마자 가기로 약속한 날을 몇 번이나 말하면서 들떠 있었다.

첫날, 경성대학교 도시공학부 교수라든가 하는 분을 만나고 그 분을 따라 어느 건축사무소에 다녀와서 어찌나 종알종알 하던지.

“사무실이 생각보다 작던데요. 근데 하는 일을 들어보니까 엄청 큰일을 하는 거 같아요. 도시 설계 그런 쪽 같아요.”

“아, 근데. 사무실에 앉아 책보고 회의하고 도면보고 그런 일만 하니까 내가 어디 끼어 앉아야할지 엄청 난감해요. 괜히 눈치도 보이고.”

“건축 전문 잡지 있거든요. 오늘 하루 동안에 그걸 한 서른 권쯤 봤을 걸요. 영주동에 무슨 아파트를 재개발하는 중이래요. 나 같으면 그 아파트 단지에 무얼 넣고 싶은지 그런 거 찾아보라는데. 하루 종일 그거 찾았어요.”

할 말은 쉬 끝나지 않았다.

“경성대 교수님요, 우리 윤인석 교수님이랑 잘 아는가 봐요. 윤인석 교수님 딸도 대안학교 다니는 거 알더라고요.”

“아, 그리고 그 교수님 자기가 쓴 책도 사 줬어요. 자기가 쓴 책인데 서점가서 샀어요, 흐흐.”

“그리고 내보고 왜 대안학교 갔는지, 가니까 좋은지 그런 것도 막 물어봤어요. 자기 아이도 보낼까 생각했는데 마누라하고 의견이 안 맞아서, 그러면서 대안학교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어요.”

“어쩌면 내일은 현장에 갈지 몰라요. 건축 중에서도 목수 일에 관심 있다니까 현장에 가 봐야하는데 하면서 알아보시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 관심 있었던 일이니까 저렇게 들뜨고 설레는 게지. 아이들이 공부를 저렇게 가슴 부풀게 설레면서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날은 가자마자 바로 전화 했다.

“엄마, 나 지금 현장에 나가요.”

아예 점심, 저녁까지 그 분들께 다 얻어먹고 들어왔다. 저녁에 와서 또 얼마나 얘기를 많이 하는지. 본 것, 들은 것 모두 이야깃거리다. 영산대학교 공사 현장에 갔는데 거기는 목수일이 거의 없어서 제가 할 것도 볼 것도 별로 없어서 내일은 다른 현장에 가기로 했단다. 대신 함께 다니면서, 밥 먹으면서 집 짓는 일에 대해서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일하는 분들이라서 아주 깊이 와 닿더라는.

목수 일처럼 직접 몸으로 하는 험한 일을 하려는 젊은이가 드물다든가, 여자 아이가 한다니까 대견하긴 한데 걱정도 된다든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늘어놓았다.

“건축이 단순하게 집을 짓는 것만이 아니잖아요. 사람이 어울려 사는 곳이니까 도시 설계를 생각해야하고, 그러려면 사람들의 삶을 떠날 수 없고. 도시 설계를 하다 보면, 자기 생각에만 깊이 빠지다 보면 사회주의 쪽으로 살짝 넘어가는 경우도 있대요.”

뭔가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진 않지만 제법 진지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길 많이 들었는데요. 종합해 보니까 결국은 사람이잖아요. 건축이든 도시든 사람을 위한 거잖아요.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해야하는 거니깐 인문학을 공부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완전히 정리된 것 같지 않아도 뭔가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저렇게 아리송하고 애매하면 스스로 더 파고들어 알아가겠지.

그리고 어제, 사흘째 되는 날. 멀리 통영까지 갔다가 밤 열 시나 되어서 들어왔다. 목수 일을 하는 현장을 일부러 찾아서 거기까지 갔다고 했다. 대목 일을 하는 데가 드물어서 거기까지 갔다고. 거기서도 여자 아이가 현장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 기대를 하면서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하고. 아주 이거다 하고 결정하지 말고 더 알아보고 더 공부해 보라고 몇 번씩 이야기하더란다. 그 분들 눈에도 어린 여자 아이가 염려스러웠겠지.

겨우 사흘 동안에 보고 들으면 뭘 얼마나 많이 보고 들었으랴. 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만으로 책으로 영상 자료로는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직접 겪고 왔다는 것. 그것이 아이를 사흘 동안 흥분하게 만든 것 같다. 건축 사무소와 현장에 따라 다니면서 제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 그 곳에서 이삼십년씩 일했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고민은 더 깊어진 것 같다.

‘해낼 수 있을까, 내가’

‘내가 생각했던 일이 맞긴 맞나?’

‘자본의 세계, 소비만 부추기는 세상에서 벗어나 다르게 사는 길을 생각했는데, 내가 하려는 일이 꼭 건축이어야만 하나?’

‘사람이 살기 좋은 집, 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집 짓는 일을 꿈꿔 왔는데, 이번에 다녀보니까 건축이라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들떠서 얘기하고 나서는 또 불쑥불쑥 아주 심란해했다. 종알종알 설레던 아이가 가끔씩 굳은 얼굴로 한 마디씩 던질 때마다 조금 더 깊어진 걸 느낀다.

머리로만, 책으로만 알고 꿈꾸다가 그 꿈꾸던 세계에, 그리고 현실에 한 발짝 다가가 보고 난 뒤의 깊이라고 할까. 아주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보고 듣고 알고 난 뒤의 고민. 알아갈수록 커지는 갈등, 그러면서 또 만나게 될 새로운 설렘. 그런 걸 되풀이하면서 점점 깊어지고 여물어지겠지.

이번 사흘간의 체험은 서인이를 조금 더 깊이 있는 ‘고민의 세계’로 이끌어 준, 참 고마운 날이었다. 그리고. 내 아이라고 내 혼자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학교 선생님뿐 아니라 아이들 세계를 더 넓고 다양하게 볼 수 있게 이끄는 야학 선생님들, 지역 사회 어른들. 서인이가 만난, 앞으로 만나게 될 현장의 많은 분들. 배움의 길을 걸으면서 부대끼고, 저 깊은 고민과 갈등을 함께 할 동무들. 그 동무들을 함께 품어 보듬어 주는 부모들.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키워낸다는 걸. 세상 모두가 교육의 주체라고 하던 말이 실체가 되어 다가온다. 우리 사는 이 세상 이 울타리가 곧 학교고 선생인 것을. 아울러 내가 할 일, 앞으로 할 역할도 뚜렷해진다.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