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아이>에서 / 임길택 외할머니 3 / 임길택 이날 이때껏 가진 땅이 없어 남의 일만 다니신 외할머니 어느 날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한테 이런 말을 하셨다. "내가 많이 늙었나 보다. 고추 딸 때 꾀부리는 사람과는 이제 같이 따기 싫어." ---<산골아이>(보리 2002) 늦가을 / 임길택 바람끝 거칠어지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 .. 시 한 편 2011.01.26
<똥 누고 가는 새>에서 / 임길택 고마움 / 임길택 이따금 집 떠나 밥 사먹을 때 밥상 앞에 두곤 주인 다시 쳐다봐요. 날 위해 이처럼 차려 주시나 고마운 마음에 남김없이 먹고서 빈 그릇들 가득 마음 담아 두어요. ---<똥 누고 가는 새>(실천문학사 1998년) 지피 값 / 임길택 가시에 손 찔려 가며 몇 날 걸려 지피를 땄다. 열닷 되 모으.. 시 한 편 2011.01.26
<나 혼자 자라겠어요>에서 / 임길택 송아지 / 임길택 박태기 꽃나무에 눈을 줘 보고 사철나무 어린잎에 코도 대 보고 딸랑딸랑 엄마 목 워낭 소리에 멀리 가지 않았어요 대답해 주고 마당가 한쪽을 참새에게 내주고 나비를 쫓아가다 뒤돌아보고 개울 건너 앞산을 훔쳐보다가 눈을 감고 머나먼 데 소리를 듣고 물어 본 지푸라기 슬며시 내.. 시 한 편 2011.01.26
강가에서 / 김수영 강가에서 /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시 한 편 2011.01.24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로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 시 한 편 2011.01.12
삼성 블루 / 박노해 삼성 블루 / 박노해 오늘을 역사적인 날 글로벌 삼성 회장님이 대한민국 사법부를 접수한 날 법과 정의와 민주주의를 돈으로 사버린 날 자본권력의 힘을 온 세계에 보여준 날 이제 대한민국은 삼성 공화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회장님으로부터 나온다 이제 삼성 로고 앞에서는 가슴에 손을 얹고 바.. 시 한 편 2011.01.10
생태학습 / 송경동 생태학습 / 송경동 십수년, 주말농장 하나 없이 아이에게 모진 생태교육만 시켰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에서 전경들이 파도처럼 쫓아오면 바다게들마냥 아무 구멍으로나 얼른 들어가야 한다는 학습 비정규노동자들이 올라간 고공농성장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새들처럼 하늘로 올라가 둥지.. 시 한 편 2010.11.24
굴뚝을 보며 / 이응인 굴뚝을 보며 / 이응인 스레트 조각 아슬한 지붕 삐뚜루 기댄 굴뚝 기어오르는 연기 팔순 할머니 혼자 뼈마디 툭툭 꺾어 피워올리는 봉화다 이것들아 밤새 무사하다 허리도 그만하다 알것냐. (시집<어린 꽃다지를 위하여>에서) 시 한 편 2010.09.02
수라(修羅) / 백석 수라(修羅) /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 시 한 편 2010.09.02
시인이라는 직업 / 이시영 시인이라는 직업 / 이시영 금강산에 시인대회 하러 가는 날, 고성 북측 입국심사대의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군관 동무가 서정춘 형을 세워놓고 물었다. "시인 말고 직업이 뭐요?" "놀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놀고 있다니 말이 됩네까? 목수도 하고 노동도 하면서 시를 써야지……" 키 작은 서정춘 형이 .. 시 한 편 2010.07.29